[기획 연재] 3회. 국가란 왜 존재하는가?_권영국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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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왜 존재하는가?

[공개법정] 노조파괴 손배배상 시민법정 방청기
권영국 변호사


지난 21일 사건번호 2021가합47000 손해배상 사건에 대한 판결이 선고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후 국정원이 주도하여 국가기관이 벌인 노조파괴공작에 대해 대한민국 등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판결 이유를 선고하기에 앞서 "이 사건은 국가권력이 정보기관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노조를 와해시키고자 한 사건이다. 원고들은 피고들의 일련의 불법행위로 인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의 단결권 침해의 피해를 입게 됐다. 재판부 역시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고 운을 뗐다.

판결 이유요지를 모두 낭독한 후 마지막으로 "주문,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 민주노총에게 21억원, 원고 전교조, 공무원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에게 각 5억 원, 원고 조태욱(KT 해고노동자)에게 2000만을 지급하라. 그리고 피고 대한민국, 현대자동차, 심종두(창조컨설팅 노무법인 노무사)는 공동하여 금속노조에 10억 원, 원고 이정훈(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에게 2000만 원을 각 지급하라"라고 선고했다. 판결 선고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것이 현실의 법정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도 나는 감치를 무릅쓰고라도 법정에서 고래고래 외쳤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정의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죄를 지은 자는 언젠가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덩실덩실 춤을 췄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재판은 실제 재판이 아니었다. 지난 20일과 21일 이틀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와 '(재)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주최로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노조파괴공작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묻는 모의재판이었다.

▲ 하태승 변호사가 23일 서울 종로구 공공상생연대기금에서 열린 노동조합 파괴 공작의 국가배상을 묻는 공개법정 추진선포식에서 소장 청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2011년에 걸쳐 국정원이 주도해 민주노총 등을 섬멸할 적으로 규정하고 청와대,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 등 정부 부처와 공모하여 재벌자본 및 노조파괴전문가 등과 결탁해 노조파괴 공작을 펼쳤던 그 실상을 알리기 위해 시민단체가 나서서 모의재판을 진행한 것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주도하여 벌인 노조파괴공작의 전모가 2018년 국정원 자체 감사결과 드러났음에도 공소시효 경과 등을 이유로 현실의 법정에서 제대로 단죄하거나 책임을 물린 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틀간에 걸쳐 집중심리 방식으로 진행된 시민법정을 유튜브 방송으로 지켜보았다. 모의재판이었으나 실제 재판을 방불케 했다. 실제 법정에서 진행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재판장은 최병모 전 민변 회장이 맡았고, 배석판사로는 조영선 변호사, 박은정 인제대 교수가 위촉됐다. 원고 대리인은 실제 유성기업지회를 대리한 김상은 변호사와 민주노총 법률원의 하태승 변호사가, 피고들 대리인은 금속노조 법률원의 송영섭 변호사와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가 맡았다. 피고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들은 누구보다 노동기본권과 인권 신장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변호사들이라 노조파괴자들의 대리인을 맡기까지 고심이 컸다는 후문을 들었다. 원고 대리인들은 노조파괴공작의 존재와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무려 168개의 증거를 제출했고, 공작의 실체와 이행 여부를 입증하기 위한 증인 신문, 공작의 위법성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전문가 증인, 그리고 피해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피해자 증인 및 당사자 신문 등 입체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피고 대리인들 또한 11개의 반대증거를 제출하며 공무원 개인의 일탈행위와 국가 책임의 문제, 공작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문제, 불법행위 시점과 소멸시효의 문제 등 다양한 법리적 문제를 제기하며 원피고 대리인 사이에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원고들 소장에 적시한 노조파괴공작의 요지는 이렇다. MB 정부 시절인 2009년, 이명박의 오른팔로 서울부시장을 지냈던 원세훈이 국정원장에 취임하자 민주노총, 전교조, 전공노를 3대 종북좌파세력으로 분류하고, 섬멸할 적으로 규정했다.

원세훈은 국정원 공식 회의에서 "종북 세력들 하는 문제, 특히 민노총이라든가 전교조, 이 부분이 도리어 북한한테 우리가 이기는데 내부 종북 좌파들을 정리해야 되기 때문에 관계되는 부서하고 지부에서는 기기에 대한 것을 확실하게 대처 좀 해줘야 되겠다"고 지시했다. "민주노총, 전교조, 전공노 하면 제일 문제라... 종북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 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진행 중인 수사를 확실히 매듭지어 더 이상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 하에 진행한 주요 노조파괴공작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정원은 민주노총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국정원 예산 1억5000만 원을 투입해 '건전 노총 설립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획에 따라 제3노총(국민노총)을 조직하고 민주노총 탈퇴공작을 벌여 서울지하철공사노조, KT노동조합 등 21개의 노조를 탈퇴시켰다. 이 과정에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과 이동걸 정책보좌관이 개입하였다. 이채필 장관이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노조분열 공작과 관련해 3억 원을 요구한 정황도 드러났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공식회의에서 우리가 공작해서 민주노총에서 많은 노동조합을 탈퇴시켰다고 자화자찬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경찰, 검찰이 민주노총 조합원 94명을 대상으로 681회에 걸친 무차별 통신사찰을 감행한 사실도 확인됐다. 하지만 사찰한 이유도, 법적근거도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알바부대(책임자 김성욱 한국자유연대표)도 동원하여 민주노총이 자살 보상규정을 두고 있는 것처럼 여론조작을 통한 심리전도 서슴지 않았다.

둘째, 원세훈 국정원장은 2011년 2월 18일 국정원 회의에서 "전교조 자체가 불법적인 노조로 해서 우리가 정리를 좀 해야 되겠다"고 지시하였고, 국정원 대북심리전단은 같은 해 5월 국정원장에게 '전교조 와해 특수공작' 계획을 보고 했다. 이를 계기로 전교조 불법화 공작이 본격적으로 개시됐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 초기에 법률의 근거 없이 노동조합법 시행령만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명했으나, 국정원은 압박을 지속하였고, 정부는 입장을 바꿔 조합원 6만 명 중 해직자 8명(0.015%)이 가입해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함으로써 조합원 5만9991명(99.985%)의 단결권을 박탈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과정에서 교육부는 전교조 상근 간부들에 대한 복귀 명령과 징계 등을 철저히 이행했고, 국정원의 교육현장 좌클릭 방지 주문에 따라 전교조 법외노조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직무이행명령과 검찰 고발 등을 충실하게 진행했다. 또한 국정원은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등 보수 학부모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이들을 사주하여 전교조를 공격하는 각종 선전과 집회 등 여론전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이들 단체는 학생들이 등교하는 학교 앞에서 “우리 아이들을 좌익 혁명전사로 키우려고 진단평가를 거부한 전교조 교사, 모두 파면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에 해당 학교에 재직 중인 선생님들의 실명을 기재해 등교하는 학생들이 모두 지켜보도록 하는 등 반인륜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6만명 조합원에게 보낸 전교조 탈퇴 촉구 편지 발송비용, 전교조 비난 책자 인쇄비, 현수막 피켓 제작비, 집회 비용을 댄 곳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었다. 심지어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서 전교조 교사로 위장해 전교조의 반국가반체제를 폭로한다는 양심선언 글을 올리는 파렴치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셋째, 국정원을 중심으로 정부 유관 부처들이 총동원되어 2019년 11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전신인 통합공무원노동조합의 출범과 지도부 선출을 막기 위한 노조설립 방해 공작을 펼쳤다. 노조 위원장 단독 후보로 출마한 양성윤씨가 소속된 양천구청에 대해 '국정원, 감사원, 행정안전부, 서울시, 검찰 등에서 직무감찰을 하겠다', '행정적, 재정적 불이익을 주겠다'며 조직적으로 압력을 가해 결국 양성윤씨를 해고하도록 만들었다. 같은 해 12월 1일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려고 하는 날에 맞춰 경찰은 경찰관 40여명을 동원해 노조 사무실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여 노조간부들을 입건하였고, 다음해인 2010년 3월 20일(토) 서울 강서구 88체육관에서 출범식을 개최하기 위해 대관계약까지 마쳤으나 정부는 당일 날 오전에 대관계약을 취소하도록 만들어 출범식까지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외에도 지면의 한계상 다 소개하지는 못하나 이명박 정부 시절 노조파괴 전문 창조컨설팅 노무법인의 자문 하에 벌어진 금속노조 대표적인 사업장들(충남지부 유성기업지회, 대전충북지부 유성기업지회,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대구지부 상신브레이크지회, 대전충북지부 보쉬전장지회,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지회, 구미지부 KEC지회)에서의 노조파괴 행위와 반인륜성, 현대자동차의 주도적인 지배개입,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방조한 고용노동부, 검찰, 경찰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행태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음 또한 드러났다.

모의재판에서 다룬 사안은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엄격히 한정된 직무범위를 벗어나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섬멸할 주적으로 규정하고 관련 정부 부처들과의 공모 또는 협력 하에 사기업과 결탁해 전방위적으로 단결권을 침해하고 노조 파괴를 자행한 중대한 국가 범죄행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헌법질서 유린 행위였으나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번 한 적이 없다. 이들 범죄행각은 국가기관이라는 이유로 유야무야되고 덮여버렸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는 어디로 갔는가? 국가는 국민과 싸우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무엇인가”라고 외치는 원고 대리인의 최후 진술이 가슴을 쳤다. 정녕 대한민국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노동자의 권리는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6개월에 걸쳐 모의재판을 준비한 시민법정 참여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전문 보기 : 국가란 왜 존재하는가?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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