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4회. 법과 정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_한상희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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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개법정] 여전한 구조적 폭력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1.11.29


구조적 파시즘

우리 현대정치사는 중앙정보부 혹은 그 후신인 안전기획부나 국가정보원을 빼놓고는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 김동춘 교수(성공회대)의 설명처럼, 이런 비밀정보경찰조직이 국가 위의 국가로 군림하는 ‘이중국가’ 상태까지 만들어냄으로써 우리의 국가체제를 ‘구조적 파시즘’의 형태로 고착시켜 왔기 때문이다.

실제 정권을 탈취한 정치군인들은 광범위하고도 포괄적인 폭력-이는 물리적 폭력과 함께 사찰이나 훈육, 억압과 착취 등에 의거한 구조적 폭력도 포함한다-을 행사하면서 시민사회를 장악하였다.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북한이라는 절대적인 적을 상정하고 이를 대내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보안법을 시행하고, 공화당 등의 파당을 만들어 대중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였다.

비밀정보경찰기구는 이렇게 구성되는 강력한 국가주의체제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것은, 구조적 파시즘 체제에 합법성의 외관을 조달하는 경찰·검찰 등의 법집행조직이나 법원과 같은 사법기관들을 조종하고 제어한다. 또한 기존의 시민사회를 토대로 구성되었던 서구의 파시즘과는 달리, 이들은 각종의 관변조직들이나 대중 동원의 체제를 구성하여 ‘국가’에 봉사하는 시민사회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이런 구조는 민주화시대로 불리는 87년 체제에서도 중단되지 않았다. 6월민주항쟁으로 촉발된 '절차적 민주주의'는 전두환 정권에까지 횡행하였던 폭력정치의 외형만 제거하였을 뿐, 반공주의와 군사주의를 중심으로 한 국가 중심적 사고를 털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80년대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제력의 집중현상과 이 대기업·재벌들이 중심이 되어 변형시켜 버린 소위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확산 현상은 또 다른 정경유착의 구조적 폭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쌍용자동차 노조의 옥쇄파업을 진압하는 경찰. ⓒ이명익


모의재판

지난 11월 20일과 21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렸던 공개법정(‘2021가합47000 손해배상’)은 이런 형식적 민주주의의 패악이 아직도 우리 삶을 옥죄고 있음을 확인한다. '시민모임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와 '(재)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 모의재판은, 168개의 증거와 증인신문 등을 통해 이명박 정권 시절 한국 국가가 국정원을 통해 저질렀던 국가범죄 내지는 구조적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이 시기 국정원은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의 대중노동조직을 섬멸해야 할 적대의 대상으로 규정하였다. 실제 이명박 정권에서 상용되었던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사이비 자본주의체제를 전제로 하였던 만큼 노동운동은 체제 자체를 건 적대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시장과 시민사회를 분리시키고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전자를 위하여 후자를 통제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당시 강조되었던 '법질서' 정치(law and order politics)는 이를 대변한다. 정치는 법으로 대체되고(정치의 사법화), 질서는 시장에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담보하는 장치로 통용된다. 이에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혹은 업무방해죄나 노조간부들에 대한 가처분 조치 등이 과거의 대공분실과 같은 물리적 폭력을 대신하였다.(이 시기에 검찰공화국이 본격화됨은 이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런 구조적 폭력을 생산하는 중심에 자리한다. ‘반대한민국세력’(소위 반대세)이라는 용어법을 만들면서 좌익, 좌파, 좌경화, 좌성향, 종복, 좌편향 등 다양한 개념들을 양산하여 폭력의 대상들을 특정해 낸다. 그리고 이런 틀에 따라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 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이들이 더 이상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단언하면서 그에 대한 수사를 확실히 매듭지을 것을 강조한다. 이에 국정원은 1억5000만 원의 국민 혈세를 투입하여 제3의 노총을 만들기로 하고 서울지하철공사노조와 KT노조 등 21개 노조를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도록 공작을 벌였다. 물론 비밀정보경찰기관이라는 오명에 어울리게 검찰·경찰과 더불어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무차별통신사찰을 실시하고 알바부대(책임자 김성욱 한국자유연대 대표)를 조직하여 여론조작까지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였다.

전교조에 대한 조치는 더욱 졸렬하였다. 고용노동부로 하여금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선언하게끔 하면서 우리 노동조합법체계뿐 아니라 노동3권을 보장하는 헌법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켜 버렸다. 또 보수적인 학부모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전교조를 공격하게 하여 학교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의 실명까지 공개하여 비난하는 반인권적인 행태도 자행하게 하였다. 물론 국정원의 위장 작전도 빠지지 않는다. 국정원 직원이 전교조 교사인 양 가장하여 전교조의 반국가반체제를 폭로한다는 양심선언 형식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공작도 서슴지 않았다.

국정원의 횡포는 그에 그치지 않는다. 노조 임원선거에 개입하여 후보자를 해고하도록 만들거나, 노조의 출범식을 방해하고, 경찰, 검찰, 법원이 합동하여 노조 사무실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고 노조간부들을 입건하게 하는 등의 사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온다.


잔해

모든 모의재판이 그러하듯 이 모의재판 또한 가상의 올바름으로 끝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촛불항쟁으로 종결되었고, 국정원의 노조파괴공작의 실상은 낱낱이 드러났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구조적 파시즘 체제를 제대로 단죄할 수 없었다. 국정원은 물론 국가조차도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었다. 이 사건을 모의재판의 형식으로 처리해야 했던 것은 이렇게 여전한 억압 체제의 존재증명인 셈이다.

지난 2019년 6월 민주노총의 김명환 위원장이 폭력시위 주도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2021년 9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었다. "감염병 확산 우려와 시민들의 통행 방해로 인한 안전 우려, 경찰서 출입 방해 등 공공안녕에 명백한 위험이 초래되고 있다”는 경찰의 경고를 위반했다는 이유다.

지난 10월에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집회를 막기 위해 서울 도심에 차벽이 설치되었다. 총파업은 "어렵게 안정세를 향하고 있는 방역상황을 위협하고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무너뜨릴 수 있"기에 “민주노총은 지금껏 쌓아온 방역 노력을 고려해 총파업 계획을 철회”하여야 하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한 중대본의 경고는 그 유력한 근거가 되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선언한 기상천외한 조치는 2020년 9월 대법원의 판단을 거쳐서야 비로소 제거되었다. 노동자들이 범죄적 수준의 산업재해로 숱하게 죽고 다치는 현실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국회와 정부를 거치면서 점점 더 개악되기만 한다.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는 노동기준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나마 최소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조차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하냥 무력하다.

요컨대, 국가보안법은 집시법과 감염병예방법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국가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는 이제 공공의 안녕 내지는 사회방어라는 말이 대신한다. 국정원은 혁파될지언정 그것이 수행하던 억압과 침탈의 기능은 여전히 그 위세를 굽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언제나처럼 끝없는 자본의 탐욕이 뒷배의 몫을 감당한다.


단죄

모의재판은 이처럼 성장의 논리, 이윤의 동기가 여전히 인간 존재를 넘어서는 암울한 현실을 깨치고자 기획되었다. 재판의 형식을 통해 지난날의 국가범죄를 고발하고 그에 불법의 책임을 물음으로써 한국국가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과거사의 한 단면을 시민의 이름으로 털어보고자 한 것이다. 동시에 여전히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는 저 구조적 파시즘의 족적을 역사 속으로 처단해 버린 것이기에 그것은 너무도 용기 있는 쾌거가 된다.

이제 이 재판의 경로를 우리가 따라가야 할 때이다. 모의재판이 내어놓은 가상의 판결이 이 엄중한 시대를 깨치는 현실의 철퇴가 될 수 있도록 법과 정의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저 엄중한 현실을 깨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원문 보기 :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2021112915313989513#0D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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