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5회. 가짜 재판을 통해 '실제화'된 공개 소장_이양구 연극연출가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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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재판을 통해 '실제화'된 공개 소장

[공개법정] 가짜 재판이 필요했던 까닭은  



이양구 연극연출가

2021.12.05.


"솔직히 말해서 가짜 재판이라 긴장감이 떨어지긴 하네요."


지난 11월 21일 끝난 '공개법정 – 우리는 대한민국 노동자입니다'에 출석하여 법정 증언을 한 이정훈(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선고를 앞두고 했던 말이다. 이 글에서는 이틀에 걸쳐 진행된 ‘가짜 재판’이 왜 필요했는지, 가짜 재판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가 고민했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간략히 공유하고자 한다.


가짜 재판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는 현실의 법정에서는 이러한 재판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과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대한민국 국가기관이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공작에 개입하였던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지만 국가의 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은 현실에서 오랫동안 진행되지 못했다. 가짜 재판은 현실에서 있어야 했지만 있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정기


현실에서도 변호사인 하태승은 가짜 법정의 무대에 올라 2011년 국가정보원이 고용노동부, 청와대와 합심하여 민주노총을 견제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해 불법적으로 자금을 유용하고 제3노총인 국민노총 설립에 개입하거나 허위비방 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고 고발했다. 국가정보원은 전교조를 불법화시키기 위해 개입하였으며, 법외노조 처분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사찰하고 그러한 교사들에 대해서 조그만 건수만 보이면 트집을 잡아 징계, 고발하는 방식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고자 하였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경우 초대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5일 만에 해고하는 과정에 개입하였다는 것이다. 가짜 재판에서 공개된 소장은 실제 재판에서 공개되었더라도 하등 다를 것 없는 내용으로, 국가정보원과 고용노동부 등 국가기관이 '실제로' 하였던 일을 가짜라는 형식 속에서 다시 한 번 '실제로' 보이게 하였다.


일레인 스캐리는 재판에서 재판의 관객이라 할 수 있는 배심원단이 플롯을 바꿀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완결된 플롯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연극과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즉 재판의 경우 이미 벌어진 어떤 사건을 재판 과정을 통해 수없이 다시 이야기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그 다시 이야기의 과정을 통해 현실에서 다른 방식으로 ‘실제화’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에게 책임감이 있었다면 실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새로운 이야기로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극의 관객이 그저 지어내기(make-up)만 할 수 있다는 스캐리가 염두에 둔 연극이 어떤 연극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말은 우리가 진행한 연극, 가짜 '재판'이 '실제화(make-real)'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연극인들과 법조인들, 그리고 사건 당사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올리는 가짜 재판의 과정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우선 모의재판의 성격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재판의 형식은 실제 재판의 카피도 그렇다고 완전한 연극도 아닌 어디쯤에서 결정되어 ‘무대’에 올랐다. 법정의 전체적인 모습은 로스쿨 모의재판과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이는 연극으로 치면 사실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법정과 최대한 비슷하게 보이고자 무대를 법정처럼 꾸미고, 재판부도 전·현직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실제 법정에서 이뤄질 법한 법리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재판장을 맡은 최병모 변호사는 실제 판사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실제 재판처럼 소송 전 과정을 지휘해 주셨다. 양측 소송 대리인석에 앉아 공방을 주고받은 변호사들은 가짜 재판의 실제성을 높여주었다.


현실의 법정에서라면 민사법의 손해배상 법리에 관한 논쟁으로 점철되었을 재판이었겠지만 가짜 재판이기에 실제 재판과는 다른 측면들을 부각할 수 있었다. 요컨대 가짜 재판은 시민의 공개법정으로 구성된 것이었고, 손해배상 관련 민사법이 요구하는 법적 구성 요건과 효과에 대한 논의를 넘어 노동조합 파괴 공작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드러냈다. 노조파괴 공작에 국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노조파괴의 피해가 당사자의 내면을 넘어 그의 가족, 회사 등 인간관계 전반에 걸쳐 어떻게 번지는지 드러냈다.


가령 국가정보원 직원 역할로 출연한 배우는 명백히 연극적인 설정 속에서 노조파괴라는 명백한 국가폭력을 저지른 국가의 현재 모습을 인격화시켜 보여주었다. 살아있는 배우의 얼굴로 법정에 출석한 국가는 증언대에 앉아 시종일관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뿐이라거나 하는 등 부인하고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현재 우리 국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심리상담실장 유금분의 전문가 증언은 노조파괴 사건을 겪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은 심리적 고통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보고였다. 유금분 증인은 노조파괴를 겪은 노동자들이 겪는 질병 등 신체의 변화, 인간관계의 변화, 가족관계의 어려움, 재무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보고하면서, 노동자들이 겪은 부당한 피해가 노동자 개인의 노력으로 회복될 수 없으며, 회사와 사회, 국가의 노력과 정당한 배상을 통해서만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통계와 오랜 상담 경험을 통해 알려주었다.


노조파괴 문제의 심각성은 노사간 힘의 균형을 잡아줄 의무가 있는 국가가 도리어 노동조합을 적대시하였다는 데 있다. 이 점을 지적하고 노조파괴 행위의 정치적 차원을 환기한 것은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한상균 증인이었다. 그는 집단으로는 그나마 견딜만해 보이는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겪는 고통이 실은 영혼이 파괴되는 경험이라는, 경험을 통한 진술을 통해 유금분 증인의 증언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법정을 강타한 것은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가령 노조파괴 공작을 견디지 못해 회사 측 어용노조로 들어가게 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이삼일 공장 인근 논두렁을 하염없이 걷다가 “나는 개다, 나는 개다. 이렇게 세 번 외치고 무릎 꿇고 들어갔다.”는 도성대(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의 증언은 어용노조 가입은 노동자 스스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피고 측 변호인의 변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이정훈의 말, 국가정보원의 KT 노동조합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겪은 뒤 12년째 해고 상태로 살아오다 정년을 열흘 앞두고 있다는 조태욱(전 KT노동조합 조합원)의 말,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금 30억을 조합원 60명이 나눠서 갚았다는 김성훈(금속노조 KEC지회 전 지회장)의 말, 2009년 파업으로 인한 100억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쌍용자동차 김정욱(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의 말은 법정을 침묵시켰다.


한편 재판부로 참여한 박은정(인제대 법학 교수)과 전문가 증인으로 참석한 권오성(성신여대 법학 교수)의 '신문'은 실상은 법학적 논의의 장에 가까운 것이었다. 가령 국가가 고의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후안무치한 행위가 아닌가, 이 경우 소멸시효 주장을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 노동권이라는 것은 헌법이 직접 인정한 권리인데 그것을 국가가 침해하였다면 민사법의 법리를 다툴 것도 없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등의 논의가 이어졌다.


사실 이번 재판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국가 측의 입장을 확정하는 근거를 찾거나 국가의 입장을 누가 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실제 열리지 않은 법정이다 보니 국가 측의 입장을 정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타 국가폭력 사건으로 인한 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보여준 입장을 참고하여 실제 국가가 보여준 모습을 그려내는 것과 피해자에 대한 회복 의무를 다하는 국가의 모습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결국 재판의 전개 과정에서 국가의 모습은 실제 현실의 모습과 닮았고, 재판부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으로 원고측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고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일원으로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위로의 말까지 전하는 것으로 재판은 마무리되었다.


이번 재판의 사건 번호는 2021가합47000이었다. 47000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선고된 47억의 배상금을 4만7000원씩 10만 명이 나눠서 갚아주자던, 노란봉투 캠페인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던 바로 그 4만7000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틀간 진행된 가짜 재판 '공개법정'은 시민모임 손잡고와 (재)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주최한 행사였지만 실상은 법정 자체가 국가의 노동조합 파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공개 소장이었다. 가짜 재판을 통해 '실제화'된 공개 소장은 유튜브에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공개되어 시민사회의 노동법정에 제출되어 있다.


전문 보기 :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22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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